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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믿는만큼자라는아이들, 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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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만큼자라는아이들, YES24

 

 

 

#그래, 이제 어디서 엉켰는지 알았지? 그렇게 쉬운 걸 갖고 괜히 엄마를 곯려 먹으려고 했구나. 엄마 때는 그런 거 배워본 적도 없어. 교과서도 시대에 따라 자꾸자꾸 바뀌니까 닌들이 엄마 세대보다 어떤 면에선 훨씬 유식할 수도 있는 거야. 네가 아는걸 엄마가 모른다고 해서 엄마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그거야말로 저말 무식한 거야.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남편이 막내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을 때마다 뭘 그리 걱정하느냐, 당신 같은 성격으로 이 험한 대한민국 땅에서 이 정도로 먹고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큰 성공이다. 공연한 걱정을 버려라 막내도 잘될 거다. 난 그 애 성격이 정말 좋다고 다독였다. 

그런데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부부간의 이런 아름다운 겸양 치덕이 아이들이 다 커버린 지금에 와서는 어디론가 다 증발되어 버리고 만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못마땅한 점을 발견할 때마다 서로 사나운 표정으로 네 탓이오. 를 외치게끔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큰댁 행사에 아이들이 자꾸 빠지려 드는 것, 방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놓고도 치우지 않는 것, 연락도 없이 외박하는 것 등등 거슬리는 것들이 잦아서 갈수록 우리 부부는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당신을 닮아서 아이들이 인사성이 없다. 당신을 닮아서 아이들이 지저분하다. 당신을 닮아서 아이들이 자상하지 못하다. 당신을 닮아서 아이들이 계획성이 없다. 당신을 닮아서.. 당신을 닮아서..

아이들이 우리 기대보다 더 잘 커 주었고 자기 삶을 충실히 잘 꾸려가고 있는데, 부모들은 조그만 문제들을 있는 대로 부풀려서 서로에게 상처를 줄 말만 골라서 하고 있는 셈이다. 

 

 

 

 

#난 눈물이 났다. 눈치를 챈 옆의 엄마들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여러 가지로 위로의 말을 해왔지만 내게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난 게 아니었다. 세상에, 나 같으면 저렇게 눈에 띄게 못한다 싶으면 벌써 그만두었을 텐데. 어쩌면 1년 동안을 하루같이 그토록 즐거운 얼굴로 다닐 수 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째는 아주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수영 솜씨가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는 워낙 물을 무서워해서 여태까지 수영을 못 배웠는데 너는 쪼끄만 애가 그렇게 수영을 잘하니 얼마나 좋으니 정말 부럽다고 했다. 그 애는 신이 난 얼굴로 자기 반에 누구누구는 자유형을 그리고 누구누구는 접영을 아주 잘한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아이들 마음의 구김살은 아이들이 만드는 게 아니다. 둘째는 비록 수영을 능숙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수영을 즐기는 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것을 엄마의 잣대로 재고 채찍질했다면 그 애는 아마 중도에 그만두었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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